당신의 아이디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라는 제목의 글을 쓴적이 있다. 어떤 분께서 한 번 내 블로그에 트랙백을 해가신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아는 분이 펜네임을 바꾼 것인가, 하고 열심히 찾아봤었다. 결국은 나와 실세계에서는 무관계인 듯한 그런 분의 트랙백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조금 당황한 적이 있었다. 다시는 태터 센터에 글을 등록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했고. 지금 생각에서는 그때는 블로그 설치 초기라 트랙백이란게 그다지 잘 와닿지 않았던듯 하다. 또 트랙백이라는게 그런거에 쓰이는 거라는 느낌도 들지 않고...
좌우간, 요즘 블로그들을 RSS리더로 훑어보면 대부분 비슷비슷한 글들이 눈에 띈다. 한때 트랙백의 홍수를 뒤덮었던 주제들을 열거해보면, 어떤 만화가에 대한 비판이 트랙백의 줄을 지은다든지, 만화나 드라마가 종영되어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 한달지. 물론 요즘도 이어지는 가장 흔한 거로는 퀴즈나 점, 성격 맞추기 류의 글들이 트랙백을 타고 이어진다.
뭐, 굳이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이런 트랙백을 통해, 평소에 알지 못하고 지내던 다른 곳의 사람들과 연결된 듯한 느낌도 들고... 좀더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블로그 운영자가 만족하면 그걸로 괜찮은 것, 이라고 마침표를 찍고 싶다. 물론 나는 나와 같이 주위의 아는 사람들이 RSS 리더기, 혹은 가끔의 방문으로 나의 생각을 보아주고, 그리고 내가 뭐 하고 있는지 알아주고, 아주 가끔은 댓글도 달고 친한척(?) 해주는 정도의 소극적인 만족도 풍족할 따름이다.
옛날 2000년 11월 15일, gourry.x-y.net 이라는 주소로 이 홈페이지를 처음 열었을 때, 방명록과 프리토크 게시판(이라는게 있었다)에 사람들이 가득차기를 희망했던 적이 있었다. 결국 사람은 가득했지만 그 끈은 상당히 멀다는 것을 느끼기까지 대체 얼마나의 시간이 걸렸던가. 그래서 지금은 하루하루 답글이 없어도, 카운터가 30 내외의 숫자만 올라가는 것을 보면, '어디선가 누군가 나를 아는 사람이 나의 소식을 보고 있구나' 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을 따름이다.
'일기'라는 것은 여기서는 조금 확대 해석되어 있다.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고 그 결과를 적은 것도 일기다. 어제 애인과 싸우고 기분나빠 끄적인 글도 일기다. 아침에 신문을 보고 정치인들 하는 일들이 마음에 안들어 적은 글도 일기다. 고로 나는 여기서 일기는 나와 관계된 무언가를 겪고, 그와 관련한 서술(감상적이건 서사적이건)을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싶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일기를 쓸 때 잊기 쉬운 것이 있다면, 내가 쓴 일기가 남에게 보여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빈번히 다뤄지는 소재는 보안이다. 많은 홈페이지를 보면, 일기만 읽어도 그 사람의 사생활을 쉽게 알 수 있거나, 그 추적의 실마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단서들이 가득하지 않던가? 또, 이런 곳에 써대는 일기는 공과 사의 경계에 걸쳐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에 대해 적나라한 폭로 비슷한 혼잣말을 하다보면, 어느새 사회를 잃고 소중한 친구도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길도 보이지 않을 지독한 안개가 자욱한 젊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웹 일기를 씀으로써 어떤 병폐에 빠질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대체로 웹 상에 띄워진 일기에는 그 목적이 숨어있다. 물론 대개 목적성을 띤 일기는 무언가 파급 효과를 바라고 있다. 물론 '바라고 있다'는 그 자체가 너무 소극적이고 간접적이라는게 문제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뚜렷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보니, 간접적이면서 소극적으로 포장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편하다. 그러다 보니, 요즘과 같이 옆집 영미네 할아버지도 메일 주소를 갖고 있는 세상에, 웹을 통해 그렇게 간접적이고 소극적이며 잘 안보이는(혹은 잘 안보이게 과대 포장된) 메시지를 내보내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메시지는 전달되었다고 믿는다. 본디 웹은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는거라고 배웠기 때문에.
그러나 대다수는, 단지 나의 홈페이지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을 뿐이지, 세상이 나의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연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모두가 저런 착각속에서 사는 건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불만과 슬픔, 각종 네거티브한 것들을 웹에 쏟아놓는다. 나중에 세상이 나만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어도, 한 번 나오기 시작한 구토와 그로 인해 나오는 토사물의 흐름을 중간에 멈추기가 힘든 것처럼, 쉽사리 멈출 수가 없다. 이 병폐야말로 마약과도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닌가.
나의 홈페이지에 나의 생각들을 본격적으로 내뱉기 시작한 것이 2000년 11월 15일 이래로 약 4년 2개월이 흘렀다. 그날부터 기록되어 있는 나의 메시지들을 살펴보면, 위의 병폐에 빠진 채로 쓰여진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누군가 보아주겠지, 누군가 알아주겠지, 하는 그런 멈출 수 없는 병폐. 새해에는 웹에 일기를 쓰는 것 자체가 병폐의 위험을 안고 있으며, 그 위험을 쓸데없이 감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새해 인사인데, 주위에 알고 지내는(요즘은 사이가 멀어졌을지도 모를) 사람들 또한 그런 병폐에서 헤어나서, 어서 현실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이것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보다는, 대개 답글도 없이 지켜보기만 하는 본 블로그 구독자들에게는, 나름대로 최고의 새해 인사가 아닐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