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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5/09 그 서류 어디 있지? (2008) (2)
- 2008/04/29 논문과 리포트 잘 쓰는 법 (2005)
- 2008/04/24 명쾌한 이공계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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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2/01 학문의 즐거움
하류지향 (2007)
하류지향 (url) /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순분 옮김/ 열음사 / 2007년 10월 25일 / 11,000원
<소개>
이 블로그에서는 지난 번 <90%가 하류로 전락한다>라는 흥미로운 책을 소개한 적이 있다. 이 책도 2000년대 들어 일본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하류로 전향하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늘 이 글은 무척이나 장문으로 적을 요량으로, 읽는 분이 끈기를 가지지 않으면 끝까지 보지 않도록 해줄 생각이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이 책의 내용의 가치를 알고픈 사람만이 읽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리 잘 쓴 책은 아니다. 내용은 참신할지 몰라도, 책 자체는 세미나 내용 자체를 축약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질문>
지금 이 글을 읽는 분에게 이 책이 필요한 지 체크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가지 질문에 대해 대답해보면 될 것 같다.
<첫번째 질문>
당신은 혹시 주변에 인맥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인맥인가? 집에 혼자 있어 외로울 때 항상 불러 술을 마시거나 수다를 떨 수 있는 소모성 인맥인가? 아니면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급전이 필요할 때 묵묵히 도와줄 수 있는 인맥인가?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는 꼭 가는 편인가? 가면 축의금은 얼마나 넣는가? 축의금을 넣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
당신은 혹시 주변에 인맥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인맥인가? 집에 혼자 있어 외로울 때 항상 불러 술을 마시거나 수다를 떨 수 있는 소모성 인맥인가? 아니면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급전이 필요할 때 묵묵히 도와줄 수 있는 인맥인가?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는 꼭 가는 편인가? 가면 축의금은 얼마나 넣는가? 축의금을 넣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
<두번째 질문>
당신은 늘 의문을 가지고 있는가? 그러한 의문 중에서 당신이 주로 가지는 의문점은 무엇인가? 혹시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가. "공부는 왜 해야 하죠?", "내가 듣는 전자회로 수업은 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습니까?", "일본어는 왜 공부해야 하죠?", "(직급 낮은 사원인) 내가 왜 부장님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선생님의 말은 왜 들어야 하죠?"
당신은 늘 의문을 가지고 있는가? 그러한 의문 중에서 당신이 주로 가지는 의문점은 무엇인가? 혹시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가. "공부는 왜 해야 하죠?", "내가 듣는 전자회로 수업은 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습니까?", "일본어는 왜 공부해야 하죠?", "(직급 낮은 사원인) 내가 왜 부장님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선생님의 말은 왜 들어야 하죠?"
첫번째와 두번째 질문 둘 중, 지금까지 교과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형태의 답 혹은 가치관을 하나라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하류로 전락할 만한 사람이다. 책에 여러가지 논지가 나오고 있지만,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좀더 한국의 현실에 맞는 예를 들어, 두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경험에 기인하여 설명하고 싶다.
<첫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
첫번째 질문의 요지는 간단하다. 당신이 위험을 얼마나 분산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평소 친목을 위한 친구만 많이 가지고 있다면, 그런 친구들은 금전적으로 그다지 도움되지 않을 때가 많다. 여기서 친목이라 함은, 학연, 지연, 혈연 등과 비교적 독립적인 인맥을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친구들은 같은 직종이나 직장에 다니게 되거나 하면 스트레스 해소 및 레저 외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이 책에서는 리스크 헤지(Risk Hedge) 라는 용어를 소개하고 있다. 말 그대로 '위험 분산'이라는 것인데, 한국인들은 비교적 위험 분산이라는 것을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잘 행하고 있는 편에 속하다. 조금 적나라하지만, 만일 당신이 고려대학교에 다니고 있고 고려대학교 친구가 많은 편에 속한다면, 사회 나가서 실패하더라도 당신을 받쳐주는 사람은 든든하다고 보면 된다. 당신의 부모님이 당신의 자식들을 분산시키고 있다면, 당신의 부모님은 리스크 헤지를 진정 잘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다못해 회사를 실직하면 형제에게 얹혀 살기라도 해야 하는데, 일본에는 그것마저 못해서 비참한 인생이 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회사를 실직하고 다시는 취직하지 못하거나 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리스크 헤지를 실행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소위 인맥 하나 제대로 없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무척이나 잔혹한 이야기지만, 쓸만한 인맥이 없는 사람이 사회에서 굴러떨어지는 것은 언제라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첨언하건대, 리스크 헤지와 반대되는 것은 '홀 아니면 짝'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험을 분산하여 전체적으로 조금씩의 손해를 보는 것을 감수하지 않고, 한 곳에만 올인하여 전체적으로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다. 주식이 조금 하강세가 되었다고 해서, 집을 담보로 삼아 더욱 투자를 늘리다가 집 전체가 패가망신하는 것과 같은 예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도 자신의 고집보다는 주변의 조언을 따랐으면 그나마 덜 손해를 보았을 것을...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주의가 나타나게 된 것을 97년 IMF의 여파라고 생각한다. 97년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수혈받고,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이 다니던 직장에서 내몰리거나 좀더 '등급'이 낮은 직장으로 이직해야만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디어를 장식한 것은 다름아닌 벤처기업으로 성공한 투자가들의 이야기이다. 소위 하나에만 올인하여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블루오션을 개척하여 큰 수익을 얻는 자들의 이야기인데, ... 맞는 이야기이다.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확률적으로 1%도 채 안되게 마련이라는 것에는 다들 신경쓰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학교나 부모, 친구들 사이에서도 위험을 분산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치고 배우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교의 도덕/윤리 교과서에서는 소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참된 말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이라고 배워왔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며 대답을 유보하는 것도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어떤가. 조금이라도 자금이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벤처 기업을 만들어 벤처 전사가 되도록 내몰고 있다. 어디에도 '(현명하게 살고 싶으면) 지금 있는 자금을 적금이나 부동산에나 넣고 조용히 사세요' 라고 하는 부처가 없다. 다행히도 우리 부모는 리스크 헤지의 대가이기에, 여러가지 위험을 피해 중산층의 지위를 가지고 조용히 살고 계시다.
그렇다면 리스크 헤지와 인맥은 대체 어떤 관계인가? 위에서도 암시했지만 답은 뻔하다. 공동으로 협약을 맺고 어느 하나가 위험에 처하면 공동으로 그를 돕는 것이 바로 인맥의 역할이다. 물론 한국의 실정에서 볼때는 사업 자금을 대주거나 하는 것이 인맥의 역할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 'S전자'에서 40대 중후반의 부장이 나이로 인해 내몰렸을 때, 그를 위해 주변의 실용적인 인맥들이 작은 중소기업의 부장이나 이사라도 맡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인맥이다. 이전보다 연봉은 반 이상 깎여나갈 수는 있지만, 적어도 위험을 분산하지는 않았는가. 그리고 그 부장도 언젠가 내몰릴 다른 인맥들을 도울 수 있으니 말이다.
인맥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다. 언젠가 인맥에 관련한 서적을 읽어 여러가지 한 소리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지금 여기서는 '억지로 인맥을 만들려 하지 말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놔두되, 어려워지면 서로 실용적으로 돕는 관계가 되도록 하자' 고 조언하고 싶다.
<두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
두번째 질문은 반항아를 가려내는 질문이다. 책에 써있는 내용처럼 나도 일본의 공립학교는 수업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다고 들었다. 또한 일본 전체적으로 '이것은 어떤 것에 쓸모가 있습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많다고 알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다. 예를 들어, 현재 다니는 학교 전기전자전파공학부에 개설된 전공과목 조교를 몇 년 째 하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도, 전기전자전파공학부 학생이 '전자회로는 배워서 뭐에 써먹나요?' 하고 질문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자신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가지는 것은 매우 좋은 현상이다. 그렇지만 이 매우 좋은 현상이 자기 자신을 하류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도 참 흥미로운 사실임에 틀림없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사실을 아시는지. 바로, 사회적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비판, 비평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약자인 경우가 많다. 는 것을.
이 말에는 약간의 넌센스가 있다. 비판, 비평적으로 참여하는 정치인 가운데에는 경제적인 약자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정치인이 아닌 사람들, 즉, 사회적 이슈가 터졌을 때 광화문에 모여 촛불집회를 하는 대다수의 시민 가운데에는 중산층과 그 이하인 경우가 많다. 절대적으로 많다. 물론 정치 참여를 활발히 하는 것은 절대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나쁘지 않은 일이 본인들을 좀더 비판적으로 만들어가고, 지금까지 통용되어 오던 상식을 부정하게 만들고, 상식 자체를 자신의 삶에서 제외시켜 버리고, 결국은 하류로 전락하게 한다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라면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정치적인 이슈에서 좀 돌아가서, 학교 수업으로 돌아가 보자. 누구나 한국의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다 보면 가끔씩 튀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개성이 튀는 학생들 말고, 선생님에게, 혹은 부모에게 '공부는 왜 해야 하죠?', '공부를 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나요?' 하고 덜컥 질문하는 친구들이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사춘기적인 반항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건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나쁜 과정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저런 질문을 던지고, 어른이 되어서도 저런 형태의 '가치 재확인 질문'을 주변 사람들에게 던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류 계층 확정이라고 써붙여도 될 것 같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유는 이 책에서 꽤 논리적으로 해설하고 있다. 우선, 저런 질문은 누구라도 선뜻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라는 것이다. 반항심에서 질문한 경우라면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겠다. 하지만 이 책에 의하면, 정말로 무심한 상태에서 질문한 경우라면 가치가 확실치 않은 일에 대해서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의 반증이라고 한다.
얼마전 지도 교수님과의 논문 지도 중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 교수님들 사이에 걱정되고 있는 것이, 대학원생의 탐구력 하락이라고 한다. 즉, 어떤 문제를 탐구하라고 하면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그 문제에 대한 자료는 산더미처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자료로부터 좀더 창의적인 주제로 파고 들어가는 것은 한국 학생들 아무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이 학교에 와있는 러시아 학생들 가운데 자료를 찾다가 잘 안되면 허접한 creative idea라도 들고 오는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탐구력의 하락이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가치 불확실에 대한 투자 의욕 하락'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투자 의욕 하락 현상이 일본의 초중고등학교 교육에도 강력하게 침투하여, 가치가 확실치 않은 일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건 좀 험담인데) 학부 때 있던 학회 후배 중 02학번 후배 한 명은 매사에 너무 비판적이라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가치가 확실치 않은 경우 계속해서 의문만 가지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같이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후배이기에 연구에서는 그런 자세를 갖지 않을거라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장기적으로는 좋은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첫번째에 이야기 한 '리스크 헤지'와 상충되는 내용이 있을 수 있다. 벤처기업 처럼 가치가 확실치 않은 일에는 당연히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인들, 왜 여기서는 가치가 확실치 않은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즉, 비지니스와는 다르게, 교육, 건강 등과 같은 문제는 이에 대해 투자해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가치를 물어볼만한 문제가 아니다는 것이다.
<결론>
이 외에도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들이 언급되고 있다. 이전에 소개했던 <90%가 하류로 전락한다>가 단순히 겁주기 위해 출판되었다고 하면, 이 책은 일본 중산층이 하류가 되는 과정에 대해 좀더 상세하게 과정과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면 좋을 것이다.
어른이 되면 사춘기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이는 무엇일까. 자신의 존재 의의에 대해 질문을 가지는 행위 자체가 터부시된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재미있는 이유지만, 그중에는 하류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하나의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스꽝스럽지만, 이제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적당히 의문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의문을 가지고 의문을 해결하는게 직업인 연구자는 적어도 실험실에서는 많은 의문을 가져야 하겠지만)
그러니까,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지금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거나 혹은 읽을 시간에, 자신이 사는 삶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고 하는 일에 대해서만 최선을 다하면, 누구나 하류는 될 일이 없다는 것.
그 서류 어디 있지? (2008)

그 서류 어디 있지? (url) / 미쓰하시 시즈코 지음, 이민영 옮김 / 새로운제안 / 2008/01/20 / 11,000원
이런 디자인의 표지로 책을 판매하는 건 임팩트가 약하다.
책의 표지가 사무실을 상징하는 색도 아니고,
표지의 타이포가 임팩트 있는 것도 절대 저얼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수필이나 소설 책으로도 보일 정도의 디자인이다.
책의 내용을 논하기 전에 표지부터 운운하는 이유는,
요즘 들어 많은 실용 서적 번역서들이 디자인과 제목에 사활을 걸고 있단 느낌 때문이다.
어차피 양서가 아닌 이상 기왕이면 예쁜 디자인으로 가는게 그쪽 업계 일이다 보니...
몇몇 실용 서적들은 좀더 신경 써서 표지를 꾸밀 것이지... 하는 아쉬움이 남을 때가 많다.
다른 '사무실 정리 관련' 책에 비해 도해가 무척 많은 편이다.
그렇기에, 평소 정리 대가인 사람은 여기서 좋은 아이디어를 뽑아갈 수 있을 듯 하다.
특히, 몇몇 실용 서적들이 보이는, '내가 해봤더니 이렇게 되더라' 는 근거없는 이야기에 비해,
'무슨무슨 학자의 이야기로는 이렇게 정리하는 방법이 있다카더라' 식의 얘기가 많아
좀더 신뢰성이 있다.
이 책에 수록된 다양한 정리법들을 모두 실천할 수 있을까는 사람의 기질에 달린 일이다.
그렇기에 원래부터 정리 기질이 없는 사람은 백날 이런 책을 사봤자 소용없다.
또한, 책의 내용이 충실한가 아닌가를 왈가왈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아이디어인, '매일 출퇴근 전후 정리하자' 모토는 정말 쓸만하다.
이건 나도 연구실에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10분씩 정리하는거 해보니까 알 정도다. 정말이다.
논문과 리포트 잘 쓰는 법 (2005)

논문과 리포트 잘 쓰는 법 (url) / 사와다 아키오 지음, 이명실 옮김 / 들린아침 / 2005
사실 <움베르트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법>과 같은 책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은 유럽권, 특히 이탈리아 쪽에서 논문 쓰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보니,
우리 실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이 책은 가까운 나라 일본 사람이 쓴 책으로 우리 실정과 참 들어맞는 부분이 많다.
일단 일본 쪽 실용 서적이 대개 '핵심'을 잘 정리하여 보여주려 하고 있기에 꽤 도움된다.
그리고 한일 양국 학생들 모두 논문 쓰기 및 발표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공통되고...
책 중에 자료를 찾는 시간 80%, 나머지 쓰고 탈고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20%라는건 사실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바로 이 자료 조사 시간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독창적'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
참고 문헌은 바로 그 토대 역할을 한다.
이전에 비슷한 생각, 여러 시도를 했던 사람들과 그 생각들을 조사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이 견고함을 증명하고자 하는...
예를 들어 '김태희는 남자다' 라는 독창적(?)인 명제를 주장하고 싶을때,
절대로 '김태희는 남자라는 주장은 이전에 나온 적이 없다!' 라고만 쓰고 넘어가면 안된다.
다른 연구도 찾아서 써놓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남자다' 라는 연구가 있었는지, (이종 분야의 비슷한 접근)
'김태희는 개구리다' 라는 연구라든가... (동종 분야의 다른 주장)
'홍석천은 여자다' 라는 연구라든가.. 이런 것들이 토대가 된다.
논문 뿐만 아니라 이런 점들은 특허를 쓸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명제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기존 자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는 논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글쓰기에서도 고려되어야 할 사항으로,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명제 및 입증을 위한 접근 방법에 대한 독창성 및 권위에 대한 비판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요즘은 전자화된 형태의 논문(pdf나 url)이 많아서인지,
B5~6 크기의 소형 카드를 잔뜩 쌓아두고 연구하는 것은 왠지 비효율적이랄까?
잘 찾아보면 EndNote, JabRef 등의 참고 문헌 정리 프로그램이 있다.
오히려 이런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는 것이 논문 쓰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물론 처음 작은 논문을 쓰는 사람은 귀찮더라도 수작업으로 정리해보는 것이 좋다. :)
아마 그럴 듯한 논문을 하나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런 책을 몇 권 정도 자신의 책상 위에 비치해두는 것도
그 어떤 참고 문헌보다도 도움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D
명쾌한 이공계 글쓰기

명쾌한 이공계 글쓰기 (aladdin) / 김성우 지음 / 제우미디어 / 10,000원 / 2008/03/25
오랜만에 보는 학회 대선배 김성우 형님의 책.
이번에는 이공계 학생도 명쾌한 문장을 풀어쓰기 위한 가이드를 제시하셨다.
늘 예상해오지만, 성우형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기초' 혹은 '기본'이다.
족집게 강의만 듣고는 영속되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듯,
필요에 따라 몇몇 양식만 따라 공장처럼 찍어내는 글이 결코 영양가 있는 글이 될 리가 없는 법이다.
사회 세태가 '좀더 빨리, 좀더 능률적으로'를 외치는 세상에서,
이 책에서 나온 성우형의 기조는 너무 느긋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도 '오타쿠적 생활'을 경험해보면서 느낀 것은,
결국 자신이 느끼지 않은 것은 자기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때, 그것의 실체를 모른 채 단지 부풀리기에 힘쓴다면,
그 부풀림도 언젠가는 끝에 봉착하게 되고, 사상누각은 무너진다는 이야기이다.
몇몇 명문들은 예전부터 친숙하게 보아오던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 연재하던 원고이다.
그 글들도 꽤 주옥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좀더 버전 업 된 버전으로 제공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공계 출신의 몇몇 사회 선배들에 대한 단상이 떠오른다.
평소 이공계에서 테크니컬한 이슈를 다루는 것에 대해 무척 겁많고 의욕이 없던 비주류는,
이공계도 뽑아준다는 말에 혹해 단편적인 어학 능력, 자격증, 학벌 등으로 포장하여
비이공계로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진출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인문계 출신의 태생적 말빨(?)이나 사회생활 기술 따위가 아니라,
이공계와 인문계의 경계에서 아무것도 특화되지 않은 존재가 된 자신 뿐인 것이다.
경계점 신드롬을 갖고 있는 심리문제아 마냥.
인문계 사람들, 내 경험 상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체계화된 철학과 이론, 비록 창의적이지 않은 것들도 있겠지만,
모두 자신들이 많은 사료를 읽고 사색하고 때로는 체험하여 체득화한 지식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저변에 깔린 사상적 토대는 이공계 사람들이 절대 이길 수 없다.
따라서 사회 생활 중 평소 공부 시간의 1/10도 안되는 시간을 투자하면서
단기간에 동일한 사상적인 토대를 갖추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얘기해두고 싶다.
이미 문과적인 마인드와 표현력을 갖췄다고 생각하는 착각하는 이공계 출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 책을 읽고 기초부터 다시 차근차근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시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너, 외롭구나 (2004)

너, 외롭구나 / 김형태 지음 / 예담 / 2004/08/05 / 9,800원
예전에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 모두 보던 시절 빌려본 것 중 하나인데,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혹은 본 적이 있는 어떤 고민서 중에서도
가장 임팩트가 강한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한 2년 전 쯤인데,
2년 전에도 한 번 읽고, 1년 전에도 한 번 읽고,
이번에는 아예 중고로 사서 한 번 더 읽어버렸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건, 내가 정말 안이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
세상에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그리고 나의 치열함은 그들의 치열함에 비하면 손톱의 때에 불과하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중요한 건, 그런 생각으로 인해 기가 죽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힘을 북돋워주는 거랄까?
세상에, 특히 어른들에 복종할 것을 권하는 그의 말투가 싫은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고용자가 될 때, 혹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기 시작할 때,
그 어떤 책보다도 많은 도움이 되는 case-by-case들이 가득한 책이라 생각한다.
하루를 자신있게 열어가는 책 (2007)

하루를 자신있게 열어가는 책 (aladdin) / 사이토 시게타 지음, 홍영의 옮김 / 동해 / 2007/01/10 / 8,500원
띠지에도 나와있지만, 역시 시간 관리 관련으로 부담없는 분량의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경이로운 것은, 이 책의 저자분이 80세를 넘으셨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일평생 살아오면서 시간에 대한 많은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라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한번 저자명으로 알라딘을 뒤져보니 또다시 경이로운 결과가 나온다.
아마도 이런 식의 부담없는 책을 주로 쓰시는 분인듯 하다.
(일본에 많이 퍼져있는 PHP 문고 같은 부류)
내용 자체는 부담이 없다.
비슷한 책으로 서너 권 정도 갖고 있으면서 항상 품안에 넣는 편이 좋다고 생각될 정도로 컴팩트하다.
그냥 옆에서 부담없이 주는 조언자 역할로 구매한다면 모를까,
내용을 바라고 거창한 책인양 사서 본다면 조금 곤란할지도 모르겠다.
생각정리의 기술 (2007.4)

생각정리의 기술 (aladdin) / 드니 르보 외 3인 지음, 김도연 옮김 / 지형 / 2007/04/01 / 12,000원
평소에 이런 것을 느끼지 않는가?
자신만의 생각 정리 방법을 사용해오고 있었는데,
막상 그 방법에 체계가 잡혀있거나 거창한 이름이 붙어있지 않은 경우.
'마인드맵'도 그런 것의 일종인 것 같다.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브레인스토밍 방식으로, 또는 아무런 규칙 없이 적어나가는 것에
약간의 체계가 더해지고 이름이 붙으면 '마인드맵'이 되는 것 같다.
그렇기에 평소에 나름대로 정제된 정리 방법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마인드맵 방법 자체에 집중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기록한 매체(예:연습장 종이)를 버리지 않고
잘 정리해두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습득한, 또는 만들어낸 아이디어 만큼 나중에도 쓰이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뉴욕의 프로그래머 (2007)

뉴욕의 프로그래머 / 임백준 지음 / 한빛미디어(주) / 2007년 9월 / 12,000원
예전에 마이크로소프트웨어 잡지에서 임백준의 프로그래머 관련 소설을 본 적이 있었다.
나름대로 전산계통의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설펐단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글도 나오면 나름대로 재밌겠구나 하는 생각은 있었다.
<뉴욕의 프로그래머>에서는 프로그래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그렇기에 프로그래밍을 공부해보지 않은 일반 사용자라면 접할 일도 없는 이클립스 같은 개발 도구라든가,
최근 젊은 사람들이 아니면 별로 생각도 할 일이 없을 듯한 익스트림 프로그래밍(XP)과 같은 개념이
팍팍 튀어나온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걸 동생에게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였다.
아마 보기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서 침대 밑 베개 재료가 되는 것은 뻔한 일이 아닐까..
마치 <슬레이어즈>나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와 같은 소형 노벨의 존재도 모르던 일반인이
이런 소설을 접했을 때 얼떨떨한 반응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즉, 여기에 나온 이야기들이 대개 이해가 되며 공감 가는 상황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 나온 이야기들을 일반인들과 공감하려고 하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여튼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는 문제를 제외하고는 충분히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전산학과 및 관련 학과를 다니거나 졸업할 예정의 학생이 프로그래머가 되어서 어떤 일을 겪을지
어느 정도는 알려주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한국에는 이런 체계적인 회사가 존재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프로그래머의 꿈이 가득한 소설책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아키텍트 이야기 (2007.4)

아키텍트 이야기 (aladdin) / 야마모토 케이지 지음, 이지연 옮김 / 인사이트 / 2007년 4월 / 12,000원
프로그래머, 특히 개발자(코더)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아직 프로그래밍을 주업으로 하는 회사 경험이 없는 저에게는
프로그래머의 생활도 현실로 겪어본 적이 없을 터인데, 미래는 생각하기 벅찬 것 같습니다.
2000년도 중반 들어서 프로그래머의 미래라고 하면 다음의 세가지로 압축되는 것 같습니다.
IT버블붕괴 - 2000년대 들어서 희소가치 높던 IT기술은 일반적인 기술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잦은 야근 - 동일한 임금을 가지고 생산성을 유지하려면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삼팔선 - 30대 중후반에 장래를 결정하지 못하면 이 업계에서 퇴출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그래밍을 하게 되면서, 프로그래머라고 하는 직업이 평범한 직업이 되어버리고,
그러다 보니 일반 직장에서 보이는 여러 특징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프로그래머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자신들의 가치 상실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개발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열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빌 게이츠, 안철수 등과 같은 사람,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인텔과 같은 회사를 보며 꿈을 가졌던 것이죠.
그러나 언제까지고 자신들의 개발의 현장에 있어서는, 그 꿈을 전수할 수 없습니다.
차츰 개발의 즐거움은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그 후배들을 보살피는 대인이 되어야 합니다.
소개하는 책은 개발자에게 아키텍트(architect)라는 미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키텍트란 코드 개발의 현업에서 벗어나 프로젝트 전체를 살펴보는 장인으로서,
많은 팀원들에게 프레임워크 설계와 지침, 그리고 편의를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일본 사람이 쓴 책 답게 다양한 도해와 대화체의 예시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개발자 자신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학문의 즐거움

학문의 즐거움 /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 김영사 / 1992년 / 6,900원 (당시 5,900원)
이번 봄에 동경대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가 서울대 석좌교수로 온다고 한다.
강의 내용은 당연하지만 대수기하.
교수님께 봄에 서울대 가서 강의만 들어도 어떻겠냐고 허락을 구했더니 허허 웃으셨다.
아마도 입학 당시 연구계획서에도 한번쯤 나타났던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시고는
'이녀석 또 뭔가에 푹 꽂혔구나!' 하고 웃으신 모양이다.
봄부터 시작될 박사과정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던것 중 하나가 바로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방한이다.
그리고 그의 저서인 학문의 즐거움은 유년기에 여러 생각을 하게 해준 책 중 하나이다.
중학교 시절 나는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수학문제(주로 유클리드 기하)를 푸는 것에 푹 빠져있었다.
반쯤은 학원 선생님이 반강제적으로 '아이디어를 짜내라'고 하여 그렇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천재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신의 아이디어의 한계? 같은 것을 느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아마도 그 생각을 돕는 도구로 이것을 구입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결과적으로 중학교 때 수학에 관한 '실적'에 있어서는 '참패'했지만,
그래도 무슨 문제든 시간을 들이면 풀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나 끈기 같은 것이 생겨난 것 같다.
요즘과 같이 약삭빠른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이런 책이,
자신의 일에 있어서 얼마나 끈기와 침착성 따위를 기르는 데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당대의 유명한 문제를 풀어낸 멋진 한 사람의 이야기인 만큼
히어로가 되고픈 사람이라면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해 경청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된다.
일단, 첫번째, 리스크 헤징은, 포트폴리오 이론에서도 다루는 것인데, diverge로도 낮출 수 없는 리스크(베타 등)는 어찌 해야 하나요? 이를테면, 내 주변의 인맥들에 대한 give ≠ gain인 경우(내 도움만 빨아먹고 정작 힘들때 아무 도움이 안되는 인간들) 말이죠.
그리고 이 분산투자는, 본문 말미의 「자신이 사는 삶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고 하는 일에 대해서만 최선을 다하면」이라는 문장과 contradict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두번째는 '반항아' 보다는 '회의론자'라고 하는게 낫지 않나요. 예시한 우문愚問들은 차라리, 이미 답을 기대하지 않는 핑계에 근접한 것이니까.
철이 들어야 한다, 나잇값을 해라 같은 말들은 분명 좋은 뜻입니다. 하지만 그게 '기득권층에 편승하기 위해서', '하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니, 씁쓸하군요. 정신적 성숙도의 결과물이, 자신의 경제 수준에 의한 사회적 위치 결정이라는 것은, 심히 부조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별로 가시돋을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냥, 제 생각은 이렇다구요. ^^;
저도 이 글에 대한 댓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성의있게 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생각을 주시는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저도 D'Arcy님의 블로그에서 극좌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포스팅을 보고 꽤 놀랐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는 극우인데, 확실히 반대되는 성향을 갖고 계시네요. 하지만 저는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 편이니 최선을 다해 답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지적에 대해...
음, 일단 그정도의 인맥을 가지는 상황이라면 좀 곤란하겠는데요. 소위 회사를 다니더라도 직장 동기들과 별다른 유대관계가 없고, 학교도 좋지 않은 곳을 나와서 (까놓고 얘기해서) 주변엔 노는 친구들 밖에 없고, 뭐 여러가지 문제인 경우겠네요.
소위 경제나 경영, 운동 등등에 대해서 '기초 체력을 올려야 한다'고들 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인맥도 기초 체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을 때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가급적이면 좋은 사람들의 사회에 끼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런 기초 체력을 기르는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경우에는 아쉽지만,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기초 체력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그리고 그 상충되는 지적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좀 미묘한 문제에요. A 아니면 B를 선택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단순히 A나 B를 선택하여 열심히 하면 극단적인 성공 혹은 극단적인 파멸을 맞이하지만, 그것이 아닌 A~Z까지의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서는 한가지를 열심히 하여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는 것이 하류에서 벗어나는 기본 요건이라고 생각됩니다. 생각해보면 공부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영어를 잘하여 어느 정도 능통하면 구조적으로 비슷한 프랑스어 등도 배우기 쉬워진다는 얘기가 있으니 말입니다.
두번째 지적에 대해...
말씀하신 대로 '회의론자(悔疑論者)'로 표기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맞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우문들을 보이는 학생들, 사회인들에 대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미리 알아보고, 자신이 주는 것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동등 이상이 아닌 경우 자신의 가치를 함부로 투자하지 않는다' 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미 얻을 수 있는 가치의 형태를 알아버리고 실망해버린 회의적 인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요. 소위, 거래를 하는 경우, 우리는 거래를 통해 얻고자 하는 가치가 정말로 타당한 가치인지 요리조리 살펴보잖습니까?
그리고 기득권층에 대한 이야기. 그것은 참 씁쓸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씁쓸하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기득권층은 자신들만의 탄탄한 인맥과 그룹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 게임은 뻔한 게임입니다. 서로 단합하지 못하는 오합지졸 병사들이 고도로 훈련된 병사들을 이길 수 없는 게임인 것을. 그렇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은 (한국에서 보였던 것처럼) 궐기하여 이에 대항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극우시각을 갖고 있는 제가 보더라도 당연한 프로세스로 보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대인(大人)이 아닌 이상, 기득권층에 들어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나름대로의 살아가는 방법(生き方)이라 생각합니다. 더 안전한 그룹, 더 안전한 루트를 비슷한 사람들과 걷다 보면, 낙오하려는 위기가 생겨도 그 조직에 충성해온 이상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겠지요.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그렇게 (상대적으로) 쉽고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누구나 그런 길을 추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쉬운 길인 경우가 많죠.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고시 공부, 공무원 공부 등을 하다 보면 그런 테크를 타게 되는 일이 많으니 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제 블로그를 자주 보셨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제가 좋아하는 '김형태 씨'는 이 블로그에서도 소개했던 '너! 외롭구나!' 라는 책에서 '이 나라의 어른들은 청춘 시대의 알리바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5~60년대 나라를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주역들은 한동안 이 나라의 실세였죠. 7~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투신했던 주역들은 지금도 이 나라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들 20대에 무언가를 아무런 바램 없이 (혹은 오직 그 투신하는 분야에 대한 근시안적 바램을 가지고) 미친듯이 해봤기 때문에 보상받고 있다는 것을 '청춘 시대의 알리바이'라는 표현으로 보였던 것으로 압니다. 꼭 명문대를 가지 않더라도, 꼭 고시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그 많은 선택지 중에 자신이 올인할 수 있는 무언가에 열정을 바치면, 그것이 자신의 청춘 시대의 알리바이가 되어 나중에 많은 이득을 안겨주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수다.
요는...철들지 않으면 하류로 전락이다...라는 것 같은데
언제나 그렇지만 용어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내용이 확확 바뀔 것 같다.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저자가 정의하는 하류 인생은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능력을 인정받지도 못하며(혹은 남들이 능력을 인정해 주지 않으며)
사회에 보탬이 되지는 못할 망정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부정적인 사고를 전파해서 암묵적인 피해나 주는 인간 군상들의 인생을 뜻하는 듯 한데 (사실상 세 번째가 핵심일 듯...맞나?)
언제나 그렇지만 정리 안된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라 중구난방일 듯 하다.
스피드 레이서도 그렇고 매트릭스도 그랬고...워쇼스키 남매(혹은 형제)의 영화를 '매우 매우 무지막지하게 사랑'한다. 브이 포 벤데타도 워쇼스키들이 감독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세계관은 일관되기도 하고...
결국 하고자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것이다.
세상에 길들여지지 마라.
끊임없이 '홀로' 고민하고 의심해라.
주변인의 도움이란 언제나 제한적이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고민하고 의심하고 배우고
그리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이 설사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라는 것이지.
책에서 얘기하는 '반항아'로 표현된 사람의 예를 들자면...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민 없이 까라는 대로 까는 놈보다는 반항하는 놈이 더 낫다'고...
물론 무작정 반항하는 놈보다 고민끝에 '나름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따르는 놈'이 더 낫고...
(그 선택이 옳든 그르든 간에 '스스로 고민한 후'에 '선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선택의 하나가 반항일 수도 있고)
사실 일본의 교육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교육도 그렇고 사실상 오십보 백보라고 보는데
두 나라의 교육만 놓고 비교했을 때 가장 잘못하고 있는 부분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죽이는 교육을 미친듯이 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사실 별 생각없이 '해야 하니까' 하나보다...라고 공부했던 애들도 어느 순간에는
'내가 이걸 왜 해야하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요는...
그런 '질문'이 나올 때 선생(먼저 난 사람이라는 뜻의 선생)이라는 것들이 '답'을 줘버린다는 것에 있다. 혹은 '답'을 주려고 애쓰거나...'답'을 만들려고 애쓰거나......사실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지...
대부분의 선생들이 말하는 아주 멋진 답이 있지 않은가...
공부는 왜하는가?
-> 잘 살려고...잘사는 게 뭔대?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남들이 부러워하고 블라블라블라...
혹은 대학가기 위해...대학은 왜 가는데? 잘 살려고 ...
확실히 나이 먹으면서 고민은 이동하는 것이 정상인 것 같다.
부모님이 밥맥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줄 때의 생각과
스스로 밥해먹고, 돈벌고, 다른 사람들과 원치도 않는 일로 신경 곤두세우며 부딪혀야만 '생존'이 가능한 경우의 생각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부정'하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다.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것이나 이미 완성된(혹은 존재하는)것에 의문을 품는 것을 철이 없다라는 말로 폄훼하는 사람이 있다면...난 그런 사람을 하류로 볼 것이다.
배움과 공부와 교육은 비슷한 말 같지만 좀 다르다. 개똥철학이긴 하지만...
배움은...통하도록 하는 거다. 올바른 배움이란...세상의 너무나 많은 대상과 통하기 위해 애쓰는 모든 행동이다. 그래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고, 전공과목을 배우는 것이고, 학창시절에는 써먹지도 못할 것 같은 잡다한 과목들을 배우는 것이다.
공부는...끊임없이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밥먹는 것도 공부고, 잠자는 것도 공부고, 걷는 것도 공부고 생각하는 것도 공부고 남을 만나는 것도 공부다. 끊김이 생긴다면...그것은 공부가 아니다. 그래서 고등학교까지만 공부하면 대학교 가서 놀아도 된다는 말은 말이 안되는 말이다. 그런 것은 공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특히 제도권 교육은 그 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그 사회의 기득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사람들을 세뇌하여 질문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가 무너지지 않게,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주의가 무너지지 않게, 독재 사회에서는 독재 사회가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사실...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고, 어떤 사회가 나쁜 사회인지는 사람마다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상류사회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노동의 댓가로 먹고 살고
능력 만큼만 보상받으며(여기에는 재능+노력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남이 원하지 않는 행동으로 물질적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히는 사람을 벌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이다.
(샛길로...함무라비 법을 좀 좋아한다. 눈에는 눈...이에는 이...거기에다 누군가가 다수를 대표할 경우,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면 일벌 백계하는 항목이 추가되면 아주 좋다)
하류사회란
일하지 않아도 먹는 사람이 생겨나고
능력 이상의 것을 바라며
남에게 피해를 주고도 가해자가 당당할 수 있는 사회이다.
부유하고 가난하고
직업이 있고 없고
결혼을 했고 못했고
사회에 적응을 하고 못하고
지식이 많고 적고
신체가 건강하고 안건강하고는 상류와 하류를 나누는데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다고 본다.
물론...위에도 언급했다시피 이것은 단어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다.
즉...책에서 하류인생이라는 것을 어떤식으로 정의했느냐에 따라서 필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도 안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가우리가 하류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블로그에 긴 글을 남겼느냐에 따라서 동의할 수도 안할 수도 있다^^
사실...배움과 공부라는 말의 아주 원초적인 뜻과 목적을 부모님이, 선생님이, 선배들이 제대로 알려주는 것 만으로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보면 된다.
그것을 못한 상태에서 갖가지 정보가 들어가니까
'스스로 생각'하기도 전에 결론을 내버리는 것이고.
세상의 불합리함을 알면서도 그 세상에 속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버리는 것이 소외 철이드는 것이라 한다면
난 죽을때까지 철들고 싶지 않다.
쓰다보면 댓글치고 길어졌다-_-;;
위에 댓글 다신 분처럼
별로 가시돋을 마음 없고 그냥 내 생각이 이렇다는 거다.
부정(Not)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데(아직 블로그에 포스팅은 안했지만...)
부정이란..........위대해^^ ㅋㅋ
난 긍정의 힘보다 부정의 힘을 더 믿는다능...
제일 싫어하는 말중의 하나가 각종 종교에서(특히 우리나라 교회가 심하지만)
긍정의 힘을 믿으라는 둥...긍정적인 삶이 좋다는 둥...하는 말.
긍정이란...진짜 치열하게 고민하고 수 없이 부정하고 부정하고 부정하고 부정해보고 나온 결론이 긍정일때만 의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 땀시롱.
간혹 긍정적인 사람과 낙관적인 사람을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사람과 비관적인 사람을 동일시하는 경우도 많고)
둘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긍정적이라는 것은 일단 Yes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낙관적인 것은 어찌되었든 좋은 방향으로 결론이 날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니까.
난 낙관주의자이면서 부정의 힘을 믿는 사람.
유신론자이면서 무교이기도 하고 ㅋㅋㅋ
담에 밥먹으면서 얘기해요 ^^;